앙드레 케르테츠 (Andre Kertesz) Mini Exhibition

























Broken plate 1929
















































Washington Park























Sidewalk 1924











Angel and Stoplight, New York City



























































Feeding the Ducks in the Late Afternoon 1924











Montmartre 1927











The Puppy Paris, 1928











FortuneTeller











Sixth Avenue, New York











A Picnic Party in Bois de Boulogne, Paris











Country Accident, Esztergom, Hungary























Marionettes from the Experimental Puppeteer Geza Blattner



































Flowers for Elizabeth











Ripples Hungary, 1913



































Muedon 1925











Portrait of a Woman in Savoy, France











Melancholic Tulip, 1939











Untitled (still life), 1974











New York, 1972











Elizabeth 1931























Underwater swimmer



































Peggy Guggenheim in her apartment in New York at East 61st Street,

September 1945









Barbershop























Ecoliers (Pupils)























Fork











Le retour du bateau























Distortion #88, 1933


























































보는 것, 그것은 읽는 것이다


유행되고 있는 한 가지 생각은,

예술가가 필연적으로 자신의 언어와 투쟁관계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강요하고 속박하고,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표현의도에 복종시키기 위해

構文의 뒤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정의가 또한 가능 할 수 있으며,

또 이것이 더 옳은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반대로 위대한 예술가란 오랜 정진이나 순간적인 직관에 의해

그가 선택한 언어의 심오한 본질을 찾아내는 것을

터득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법칙들이란 그것들로 부터 가장 자명한,

혹은 가장 은밀한 표현의 능력을 개발해 내는 것이다.

이 두 유형의 예술가들은 항상 대립할 것이다.

전자의 유형은 그의 자아가 항상 언어를 거역하지만

후자의 유형은 언어와 세계 사이에 점차로 증가되어 가는 일치를

체득하게 된다.

그 까닭은, 예술가가 만약 그것을 궁극적인 결과에까지 이끌어가기만 한다면

자기 예술의 본질적 형태에 대한 예술가 자신의 분석은 필경 그로 하여금

세상의 어떤 대상들과 그를 결합시키는 은밀한 일치의 관계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그의 예술의 법칙들 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세상 자체의 법칙이라는 것과

예술은 그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러한 것이 앙드레 케르테츠의 주제를 고취시키고

그의 작품들을 생기가 돌게만드는 근원적인 직관일 것이다.

그는 데뷔시절 부터 흑백사진 이라는 것이 그 본질상 단순한 영상포착의

이상의 것이 되도록 인도되어져 있다는 것과,

흑백사진이 사물을 표현해내는 방식이 사진으로 하여금

세계에대한 지적이해작용의 한 양태가 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제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까닭은 단지 사진이 이세계를 재단하고 그것을 인화지에 투사하고,

움직이지 않게하고 그리고 자연의 삼차원을

이차원으로 축소시키기때문만이 아니라

흑백사진이 사물들의 색채를 완전한 흑색에서 선명한 백색에 까지 이르는

추상적인 색계의 이동으로 대치하기 때문이기도 한것이다.

따라서 흑백사진은 이미 Arago 가 세계를 기록하는 것이나

그것의 비쳐진 모습을 고정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개념적 조작에 의해, 형태와 특징, 그리고 대조, 음영과 표상의 본질적 면모에

접합시키는 것을 통해 사진에 부여했던 바와같은 세계의

"드러냄"에 적합한 것이다.

움직임의 임의성(보들레르에 따르면 선들을 옮겨놓는..) 과

변화하는 색채의 다채로운 광채에서 벗어난, 흑백사진에 의해 포착된 세계는

그것을 보다 더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추상에로의

통로로서의 지위를 수락한다.

거기서 인물, 사물, 광경들은 조직화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세계의 조각들과그것의 흑백으로된 환형은 세계를 투시하고 거기서 의미,

즉 막 이루어지고 있는 의미의 싹을 들춰낸다.

따라서 흑백사진은 예술가가 보다 가볍고 덜 거추장 스러우며

신속하고 정확한 렌즈가 장착된 사진기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적극적인 이해 가능성의 우수한 도구가 되었다.

그런데 앙드레 케르테츠의 젊은시절과 데뷔시기는 흑백사진이

완벽한 기동성을 갖추게된 바로 그 시기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제 흑백사진은 세계로 나아가 그것을 관찰하고 그 법칙을 가려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첫 사진작품들에서부터 앙드레 케르테츠는

이 새로운 리얼리즘이 자리잡게 되었음을 표현해내는데,

이 새로운 리얼리즘은 그를 끊임없이 사물에로,

능동적인 포착과 이해의 움직임속으로 이끌어가게 된다.

헝가리 평원의 자그마한 농가, 온통 진흙 범벅이 되어있는 황폐한 마당,

길위의 오리떼, 네거리의 장님악사. 나무그늘아래 숄을 걸치고있는 여인,

질주하는 말들, 빗물자국이 번질거리는 보도등,

마치 시간에 의해그 자리에 그대로 배열되어진 듯한 보잘것 없는 흔적들은

우리의 향수에 힘입어그 은밀하면서도 위협당하고 있는 본질들을

들춰내 보여주는 듯하다.

치밀한 화면구성과 끊없는 회색조의 우수는,

플로베르가 자신의 문장에 반과거 시제를 사용하면서 바랐던 것과 같은

" 표면의 광택" 을 그 흔적들에게 부여해 준다.

또 그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도처에 현존해 있는 존재인 사진작가는

자기가 그곳에 있었으나 사물들과 대면하여 스스로 자취를 감췄다는 것을

그의 재능을 통해 드러낸다.

이 새로운 리얼리즘( 일차대전후 이것은 "신 즉물주의" 라는 이름을 갖게된다.) 은

사진의 황금시대로의 귀환, 새로운 세례선서와도 같은 것이다.

세계는 과학적인 윤곽과 정확한 선, 생생한 대조외 미묘한 음영을 통해" 있는 그대로"

고정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럴때 사진작가란 그 세계를향해 나아가는 사람인데,

그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자신의 주관성으로 혼란을 확대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세계에서 읽을 수 있었던 표현의 요구에 답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그 세계가 사진 건판위에 고정되려고 하는것은 아마도 거기에서

자신의 영속적인 생명과 존재를,

아니 다른 무엇보다도 그 이해 가능성을 획득하기 위해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케르테즈가 일찌기 깨달아 탄복할 만하게 구사 한것은 고유한 의미로든

비유적 의미로든, 다음과 같은 소재들이 흑백사진과

깊은 일치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적 세계와 인위적 세계속에 씌여질 수 있는 모든것,

가령 포스터, 광고, 또 바퀴, 울타리, 눈에 박힌 말뚝, 석양무렵의 그림자,

나뭇잎 때문에 더욱두드려져 보이는 흰 담장위의 繡와 같은 형상들이 그것이다.

흑백사진은 세계의 線적 진실을 밝혀주는 매체가 되었다.

이리하여 구체적 추상작용의 움직임이 완성되고, 리얼리즘이 완성되고,

그리고 흑백사진이 그 전달수단이었던 진실의 움직임이 완성된다.

이 진실은 보이는것은 읽을 수 있다는 것, 이 세계는 판독해내야 하는 기호들..

그러나 여느 때처럼 언어의 기호가 아니라 표상문자, 회화문자,

光 문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보는것 그것은 읽는 것이다.

오늘날 흑백사진이 더이상 옛날과 같은 의미를 지니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칼라사진의 출현과 발전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그 까닭은 오늘날 보이는 것과 읽을 수 있는 것 사이의 관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며, 읽히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더이상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읽는다는것이 대단한 놀이..

(세계는 이 놀이에 의해 그 암호가 풀리게 된다) 이기 때문이다.



- 다니엘 살르나브 - 열화당





앙드레 케르테츠 [Andre Kertesz, 1894~1985]




헝가리 태생의 미국 사진가.

국적 미국
활동분야 사진
출생지 헝가리 부다페스트
주요작품 〈몬드리안의 집에서〉(1926)




189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912년 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증권거래소에서 일하였는데,

이때부터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참전하여 전쟁상황을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1925년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파리로 건너간 그는

잡지나 신문에 실리는 사진을 주로 찍었다.

1927년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28년에는 만 레이(Man Ray),

베러니스 애보트(Berenice Abbott) 등과 함께

제1회 사진 〈앙데팡당전〉에 참가하였다.

케르테츠는 포토저널리즘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이때부터 뉴스사진의 성격을 벗어난

일상생활 속의 르포르타주 사진을 시도하였다.

한편 1933년에는 거울을 이용하여 왜곡된 인체 누드사진을 선보여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36년 미국으로 건너가 1944년 미국 시민으로 귀화하였다.

그뒤 주로 상업사진을 찍으며 생활하다가

1962년부터 순수한 작품사진만 찍었다.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후 여러 차례 사진전을 가졌다.

그는 주로 소형카메라로 캔디드포토(candid photography)를 찍었는데,

이는 시대를 앞선 시도였다.

이러한 르포르타주 사진의 맥은

1930년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일상의 이야기로 가득찬 그의 사진은 극적인 면도 로맨틱한 내용도 없지만

파리의 거리풍경과 서민의 생활을 주로 다룬 작품 속에서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새로운 시각적 차원을 모색한 조형사진도 시도하였는데,

인체의 왜곡된 조형미를 추구한 초현실적인 요소가 강조된 누드 시리즈와

디자인적인 형태미를 추구한 도시 건축물 사진들에 잘 나타나 있다.



(출처 NAVER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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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리꼬뮨 | 2005/06/30 15:22 | Photographer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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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지구 일기 at 2007/01/10 14:23

제목 : 흑백사진 배우기
방종모포토스쿨에서 흑백사진과정을 오늘부터 듣기로 함. 주 1회 2개월간 디지탈 시대에 아마도 사라질지도 모르는 암실 현상인화 과정을 배우는 게 소용이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교보에서 마침 외서 20% 세일 중이어서 Les McLean이 지은 Creative Black and White Photography란 책도 샀다. 아마존 독자들의 평점이 낮은 이유는 필름에 관한 내용 위주이고 digital 흑백사진에 대한 내......more

Commented by 라주미힌 at 2005/06/30 16:17
악, 나도 몇일전에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이 사진들 찾아서 저장해 놓았는데....예전에는 없던 큰 사이즈의 사진들도 이제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더군요. 참 멋진 양반이죠. 어떻게 이런 사진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신기합니다.
Commented by 빠리꼬뮨 at 2005/07/01 14:50
저두 그래요...^^
Commented by ASHLEY at 2009/10/06 17:44
BGM너무 좋은데 곡명이 뭔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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