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ne Arbus mini exhibition


Patricia Bosworth가 쓴 Arbus의 자서전






Diane Arbus, Identical twins, Roselle, NJ, 1967.













A family on their lawn one Sunday in Westchester, N.Y.1968











A Young Waitress at a Nudist Camp, N.J, 1963











Diane Arbus, Boy with a toy hand grenade in Central Park, NYC, 1962.












Woman in Her Negligee, NYC, 1966











Masked man at a ball, N.Y.C.1967











Woman at Masked Bal, 1967











A family one evening in a nudist camp, Pa.1965











A young man with curlers at home on West 20th Street, N.Y.C.1966











Two ladies at the automat, N.Y.C. 1966











Two Girls in Matching Bathing Suits, Coney Island, N.Y., 1967











A Woman in a Bird Mask, 1967











A young Brooklyn family going for a Sunday outing, N.Y.C.1966











Boy with a straw hat waiting to march in a pro-war parade, N.Y.C.1967











Girl with Cigar in Washington Square Park, NYC, 1965











Triplets in their bedroom, N.J.1963











Transvestite at her Birthday Party, NYC, 1969











Teenage couple on Hudson Street, N.Y.C.1963











Puerto Rican woman with beauty mark, 1965











Jayne Mansfield Cimber-Ottaviano, actress, with her daughter, Jayne Marie, 1965











a husband and wife











Diane Arbus, New York, New York, USA, 1969











A Jewish giant at home with his parents in the Bronx, N.Y.1970











Albino sword swallower at a carnival, Md.1970











Girl in her circus costume, MD, 1970











Masked woman in a wheelchair, Pa.1970











Mexican dwarf in his hotel room in N.Y.C.1970











King and Queen of a Senior Citizens Dance, N.Y.C.1970











Untitled01, ca. 1970,











Untitled03, 1970-71











Untitled06,1970-71











Untitled 07, 1970-71











Diane Arbus
(1923 ~ 1971)


Diane Arbus 인터넷 갤러리

글 : 현경미(Kyung-mi Hyun)

등록일 : 1999년 7월 31일


다이안 아버스에 관한 호기심은 순전히 그녀가 자살한 사진가였다는 점에서 시작되었다. 왜 그녀가 마흔 여덞의 나이에 손목을 끊고 다량의 수면제 주사를 놓은 뒤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지 궁금했다. 사진가의 삶을 알면 그의 작품 세계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기형인, 난쟁이, 거인 등등 그녀의 작품안에 그녀의 삶이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기괴하고 거부감이 일기도 하지만 그녀의 사진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처럼 정직하기도 하다. 어떤 것은 그녀가 앨런 아버스와 이혼한 뒤 느꼈다던 '슬픈 행복감(sad happy)'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10대 커플, 유태인 가족과 함께 있는 거인, 다운증후군 사람들, 마스크를 쓰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없는 슬픔과 행복감이 나타나 있다.

처음에 http://www.masters-of-photography.com/A/arbus/arbus_resources.html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잠깐 망설였다. 기사목록(articles), 사진(photographs), 자료(resourses)중에서 무엇을 먼저 볼까 고민이었다. 사실 그녀의 일생에 대해서는 패트리샤 보스워스(Partricia Bosworth)가 쓴 "다이앤 아버스"전기를 읽었기 때문에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복잡한 삶을 어떻게 간추려 놓았을까 궁금한 생각도 들었지만 마우스는 이미 사진을 클릭하고 있었다.
사진은 초기작품인 손에 장난감 수류탄을 들고 있는 소년에서부터 1995년 출간된 '무제(Untitled)에 수록된 다운증후근 사람들의 표정까지 다양하게 실려 있다.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집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도대체 다이앤 아버스라는 사진작가가 왜 그렇게 유명하고 사람들이 그녀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없는 흡인력에 빨려 들어 감동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을 본 다음에는 articles 난을 클릭 하면 세 개의 글이 실려 있다. 먼저 사진사전에 실린 그녀의 간략한 일대기를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그녀의 일생이 워낙 간략하게 나와 있기에 그녀의 전기속에 나타난 삶을 추가해 보면 다음과 같다.
다이앤 아버스는 1923년 뉴욕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뉴욕에서 모피를 주로 취급하는 러섹스 백화점을 경영하던 관계로 어려서부터 유모와 함께 생활할 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했다. 다이앤이 14살 되던 해 아버지의 백화점에서 사환으로 일하던 알랜 아버스를 만난 것이 그녀의 인생을 결정하게 되는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만나자마자 서로 사랑에 빠진 그들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을 키워나가다 다이앤이 18살이 되던 해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을 한뒤에 그들은 생계를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이앤은 사진의 기술적인 모든 것을 알랜한테서 배웠다. 하지만 그 둘이 힘을 합쳐 스튜디오를 냈을 때 다이앤이 없었다면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알랜이 사진에 관련된 기술을 전담하고 다이앤은 탁월한 감각으로 사진의 디자인이나 소품들의 위치를 결정했기에 둘은 완벽한 파트너를 이루었다. 이결과 그들의 스튜디오는 러섹스 백화점의 패션 카달로그만 찍는 수준에서 벗어나 점차 영역을 넓혀 '보그', '글래머'등 패션잡지를 상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패션 사진을 찍는 것은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서 일을 했지만 그녀는 점차 패션일에 싫증이 나고 지쳐가자 자기 영역을 찾고 싶어 했다.
1957년 그들의 동업관계가 깨지면서부터 그녀만의 독특한 사진인생이 시작된다. 만약 그녀가 계속해서 패션사진을 찍었다면 오늘날의 위대한 사진가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알랜과의 협력관계가 끝났다는 것은 결혼생활이 파탄나기 시작했다는 의미와 같았다. 다이앤이 자신만의 사진세계를 추구할 때 알랜은 젊었을 때부터 가졌던 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알랜은 배우수업을 받고 다이앤은 사진수업을 받고 나서부터 둘이 공유하던 일상생활의 폭이 좁아지게 되고 결국 그들은 1959년 정식으로 별거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정신적 유대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비록 별거는 했지만 알랜은 두 딸을 키우고 있던 다이앤에게 계속해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사진에 관련된 문제로 다이앤은 알랜에게 연락을 하곤 했다.
다이앤은 패션일을 그만둔뒤 알렉세이 브로드비치(Alexey Brodovich)한테서 사진을 배우면서 늘 사진기를 목에 걸고 뉴욕의 이곳 저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찍었다. 하지만 워낙 수줍음이 많은다이앤은 직설적인 그의 수업방식을 견딜수 없었서 그의 수업을 포기한다. 그 다음에 평생 스승으로 만난 사람이 바로 리젯 모델(Lisette Model)이다. 리젯 모델을 만나면서부터 다이앤은 자신의 사진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리젯에게 의논을 한다.

리젯 모델을 제외하고 그녀와 가장 가까웠던 사진작가를 꼽으라면 아마 60년대 가장 화려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리차드 아베돈(Richard Avedon)일 것이다. 다이앤은 마빈 이스라엘(Marvin Israel)의 소개로 워커 에반스같은 위대한 작가와 교류를 갖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은 아베돈이었다. 늘 자신의 기술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었고, 심지어는 필름을 끼울때마저 제대로 끼워졌는지 의심을 하고 있던 그녀에게 예술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던 아베돈은 사진 기술에 관한 훌륭한 조언자였다.

1963년과 1966년 두차례에 걸쳐 구겐하임 장학금을 받고 작업을 한 뒤 1967년 뉴욕의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에서 개리 위그노랜드(Gary Winogrand)와 리 프리랜더(Lee Friedlander)와 함께 '새로운 다큐멘트'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갖게 된다. 이 전시를 계기로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새로운 사진작가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1969년 알랜과 다이앤은 마침내 법적으로 이혼을 하고 다이앤은 새로 부부로 탄생한 그들을 위해 작은 파티까지 열어 주었다. 이 사건은 그녀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알랜이 젊은 배우 마리클레어 코스텔로와 결혼한 것까지는 상관없었지만 결혼과 동시에 허리우드로 이사간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친구에게 그녀의 한 부분이 떠나간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마음놓고 사용할 암실마저 없어져 버리는 결과가 되어 그녀의 사진작업에도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되었다.

집안내력과 더불어 간염으로 인해 우울증 증세가 심해진 그녀에게 알랜과의 물리적 거리는 극복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자살까지 이르게한 근본적인 원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고독감과 사랑의 상실이 아니었을까 한다. 1971년 7월 그녀가 자살하고 난 뒤 1972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과 이어서 미국전역과, 캐나다, 일본에서 열린 순회전에는 7백25만명이라는 경이적인 숫자의 사람들이 몰려 들어 그녀의 사진을 보았다.

그다음에는 다이앤의 첫 번째 책인 'An Aperture Monograph"에 실린 글이 나온다. 여기에 보면 왜 그녀가 기형인의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말하고 있다.

"기형사진이야말로 내가 가장 많이 찍은 것이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사진을 찍은 대상중의 하나로서 내게는 지독히 흥분된 일이었다. 나는 그들을 숭배하곤 했었다. 나는 아직도 그들중 몇몇을 좋아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들은 수취심과 경외심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가던길을 멈추고 수수께끼에 답을 요구하는 동화 속의 인물처럼 기형인들에 대해서 특징적인 전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찍한 고통을 당한뒤 심한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된다. 기형인들은 이미 이러한 인생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삶을 초월한 고귀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어서 "구경꾼 : 길거리사진의 역사(Bystander:A History of Street Photography)"에서 콜린 웨스터벡(Colin Westerbeck)과, 지금은 칼라 사진가로 유명한 조엘 메로비츠(Joel Meyerowitz)와의 대화중에서 아버스와 관한 이야기가 있다. 조엘 메로비츠는 다이앤 아버스가 뉴욕의 이곳저곳을 헤매이거나 '허버트의 기형 박물관(Hubert's Freak Museum)'에 가서 사진을 찍을 때 자주 동행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대낮에 후래쉬를 쓴 이유는 배경이 사람 얼굴보다 밝아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래쉬를 사용함으로 인해서 그녀는 역광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림자자가 지니까 태양을 바라보고 다시 포즈를 취하라는 주문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사람들은 카메라를 향애 눈을 찡그릴 필요도 없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후래쉬 사용법에 나름대로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며 그녀의 사진을 규명하려 했으나 그녀의 의도는 너무나 간단했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다이앤의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는 사이트가 http://209.132.60.44/Presentation8/sod001.htm 이다. 여기에는 1966년부터 1971년까지의 다양한 시기의 사진 18개가 전시되어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진의 크기가 작아서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단지 그녀가 어떤 사람들을 어떠한 의식을 갖고 접근했는지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녀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http://www.clark.net/pub/cosmic/darbhcpp.html로 들어간다. 이곳에는 그녀의 5섯살 때 사진을 비롯해서 알랜 아버스와 함께 찍은 사진, 누드촌에서 찍은 사진이 나와 있다. 이 밖에도 다른 사이트가 많이 있지만 그 중 독특한 것이 두 개가 있다.

http://www.netspace.net.au/~visionwk/dark1a.htm 이것은 다이앤 아버스의 일생을 제럴드 레프코프스키(Gerald Lepkowski)가 "어둠(Dark)"이라는 희곡으로 '멜번 국제 예술제'에 참가하게 된 것을 쓴 내용이다. 여기서 그는 왜 아버스의 사진에 매료되어 그녀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는지 이야기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16살 된 매트 울프(Matt Wolf)라는 학생이 만들어 놓은
http://www.concentric.net/~Mpwolf/dianearbus/gallery/ 이다. 여기에도 그녀에 대한 간략한 전기와 갤러리에 그녀의 사진이 실려 있다. 16살이라는 어린 학생이 아버스라는 사진작가를 좋아해 그녀를 위한 사이트를 열고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무도 그녀가 왜 기형의 사람들 사진에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그녀 역시 어떤 본능에 의해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았고 그속에서 그녀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왜 자신이 기형인들에게 호기심을 느꼈는지는 제대로 설명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라고 명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예술은 극히 드물다. 조엘 메로비츠의 말처럼 그녀는 자신의 본성에서 우러나와 작품을 창조해 냈던 것이다.






"기형사진이야말로 내가 가장 많이 찍은 것이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사진을 찍은 대상중의 하나로서 내게는 지독히 흥분된 일이었다. 나는 그들을 숭배하곤 했었다. 나는 아직도 그들중 몇몇을 좋아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들은 수취심과 경외심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가던길을 멈추고 수수께끼에 답을 요구하는 동화 속의 인물처럼 기형인들에 대해서 특징적인 전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찍한 고통을 당한뒤 심한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된다. 기형인들은 이미 이러한 인생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삶을 초월한 고귀한 사람들인 것이다."

- Diane Arbus







by 빠리꼬뮨 | 2006/02/20 15:02 | Photographer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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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빠리꼬뮨 at 2006/02/20 15:23
My Solid Ground - Melanchonie
Commented by 이해인 at 2008/10/14 23:30
저 안녕하세요. 저는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제가 듣는 사진 수업에 다이앤 아버스에 대해서 조사좀 하려고 검색하다가 이 블로그에 오게 되었는데요 . 사진을 좀 참고 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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